[금강일보 김현호 기자]
콜럼버스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여러 나라를 떠돌며 스폰서를 찾았다. 광활한 바다 건너 미지의 대륙이 있다는 확고한 믿음에서였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에스파냐 여왕으로부터 자금을 구하고 구대륙에서는 그 누구도 건너지 않은 서쪽으로 향해 현재의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 결과 막대한 부를 쌓고 명성을 떨쳤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 남들은 동쪽으로만 향할 때 그는 서쪽으로의 항로로 택했고 꿈을 이뤘다. 유토비즈 배종환(52) 대표 역시 언제나 새로운 시장을 향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콜럼버스처럼 추진력을 갖고 실행에 옮긴다. 그의 눈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늘 미래를 지향한다. 유토비즈의 길이 거기에 있다.
#. 맥가이버를 좋아하던 청소년
배 대표는 꿈이 영글기 전 TV 속 맥가이버를 흠모했다. 무엇보다 맥가이버 만능칼에 푹 빠졌었다. 어떤 위기에서든 과학적 지식 등을 총동원해 탈출하는 맥가이버의 모습은 어린 배 대표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아로새겼다. 모든 남자의 우상인 맥가이버 시리즈가 종영되고 그를 선망하던 이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자취를 감췄겠지만 배 대표는 늘 자신의 롤모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배 대표는 공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TV 속 우상이 그를 공학도의 길로 안내한 것이다. 맥가이버는 배 대표의 첫 스승이라 할 수 있다.
“맥가이버를 싫어하던 아이가 있었을까요? 모든 남자의 로망이었죠. 맥가이버의 기술이 나오기만 하면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던 때죠. 특히 온갖 재주를 부리는 맥가이버 만능칼이 주는 희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만능이란 건 기술의 집약체였어요. 거기에 반한 겁니다.”
배 대표는 그렇게 한남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대전과의 첫 인연이다. 착실하게 대학교를 다니고 남들처럼 신성한 국방의 의무도 마친 뒤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다행히 대전의 한 회사에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의료과학분야 업체였다. 맥가이버가 보여준 기술을 드디어 써먹게 됐다는 마음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단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온다. IMF였다. 이제 막 취업한 홀몸의 배 대표는 해고 1순위였다. 입사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그는 사회에서 첫 실패를 맛봤다.
#. 새로운 시장을 갈구하다
다행히도 IMF의 여파는 그에게 오래 가지 않았다. 곧바로 다른 직장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의 두 번째 직장은 군인공제회. 정보통신 관련 종사자를 찾는데 대전 근무요원이 필요했단다. 정보통신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대전에 거주하던 배 대표가 적임자였다. 그는 곧바로 공제회에 입사해 당시 프로젝트였던 워게임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여기서 그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맥가이버가 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워게임이란 프로젝트는 순수 국산 시뮬레이션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어서 기술력 좀 있다는 업체 관계자는 물론 다양한 기술설계자들이 모였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배 대표에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프로젝트는 무사히 완성됐다. 이후 공제회는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완성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공제회는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배 대표의 마음 한켠엔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비록 맥가이버가 됐으나 진정한 맥가이버의 능력은 위기 상황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위기 상황을 만들긴 어려우니 새로운 시장으로 향하길 바랐으나 공제회는 굉장히 평온했고 안정적이었으며 보수적이었다. 새로운 시장을 굳이 개척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때 쯤이었을까. 굉장히 루틴한 삶이 이어지고 있단 기분이 들었어요. 항상 맥가이버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걸 동원하고 결국 임무를 완료하잖아요. 내가 롤모델로 삼은 건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맥가이버지, 임무를 완료하고 루틴해지는 맥가이버가 아니었어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이었죠.”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갈증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 한 지인이 배 대표를 찾아왔다. 회사를 차릴 건데 R&D 분야를 맡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그리곤 자신의 회사와 비전을 소개했고 배 대표는 일말의 재고도 없이 승낙했다. 2002년이었다. 거기서 열심히 R&D에 빠졌던 그를 향해 일 잘한다는 평판이 돌기 시작했고 많지 않은 나이지만 창업멤버로서의 연륜 등이 인정돼 이사까지 지냈다. 회사도 정확히 자리를 잡았다라고 표현하기 힘들지만 관련 분야에서 다크호스로 인정받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2009년 회사 경영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바다건너에선 모기지사태가 터지고 국제금융위기로 이어지며 혹독한 여파가 확산 중인 시기였다.
#. 항상 새로운 걸 찾아서
국제금융위기는 꽤 강력했다. 회사가 좀처럼 매출을 회복하지 못 했다. 사장에게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 보자고 권유했다. 사장은 장고를 했으나 새로운 시장으로의 도전을 꺼렸고 결국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창업멤버들과 모여 “이대로 끝내긴 아쉬우니 우리끼리 회사를 차리자”라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주력 산업으로 정한건 IT 간 융합이었다. 기존 IT 시장은 레드오션이니 이들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것이었다. 배 대표는 IT 간 융합에도 관심이 있어 이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다양한 IT 간 융합을 통해 전혀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시장을 이끄는 데 성공했다. 기술박람회에 참가하면 이들의 기술력은 어디서든 인정을 받았다. 한 박람회에서 배 대표는 자신들이 가진 기술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즉 VR과 AR이었다. VR은 일종의 체험 위주 프로그램으로 시장에 소개되고 있었으나 완벽한 상용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AR은 VR에 비해 인지도가 더 떨어지며 기술 자체의 상용화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는 수준의 시점이었다. 배 대표는 자신했다. 앞으로의 먹거리는 두 기술이라고. 곧바로 부사장에게 달려가 지금부터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사장 역시 굉장히 긍정적이었으나 기존 시장에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지는 게 더욱 중요했다는 판단에 블루오션 진출을 하지 않았다.
“VR과 AR은 새로운 시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회사에 강력히 진출의 필요성을 역설했죠. 하지만 회사는 새로운 시장이 아닌 기존 시장을 선택했고 전 다시 회사를 나와 지금의 유토비즈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VR과 AR 시장을 선점하며 유토비즈는 관련 산업의 선두주자가 됐다. 각종 관련 공모사업에서 1등은 떼어놓은 당상과 같이 유토비즈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벌써부터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려 한다. 그는 유토비즈가 특정 산업에 주력한다는 말을 하지 못 한다. 언제든 기회가 되면 새로운 시장으로 달려가야 해서다. 그래서 항상 인력난에 시달린단다. 새 부대에 담을 새 술이 필요해서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는 데 주력한다. 비록 역사는 콜럼버스만을 기억하지만 그의 함선에 있던 수많은 조타수와 항해사, 갑판요원이 없었다면 그는 몽상가에 불과했을 일이다.
“새로운 시장이 있으면 늘 욕심을 내요. 그리곤 달려가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만 달려가면 소용없더라고요. 절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영역은 넓어지고 나의 능력은 성장합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직원들은 그에게 스스럼없이 아이디어를 낸다. 신뢰가 없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가 어떤 새로운 시장으로 향할지 모르지만 배 대표와 유토비즈의 항해는 순항이 분명해 보인다.
글·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